흔히들 꼼데가르송이라 하면 흰 바탕에 빨간색 하트 모양 얼굴이 있는 로고를 떠올릴 것이다. 컨버스와 콜라보한 척테일러가 생각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로고는 꼼데가르송의 29개 라인 중 단 하나인 Play 라인의 로고일 뿐이다. 따라서 꼼데가르송을 로고 플레이나 하는 브랜드로 기억한다면 크나큰 오해가 아닐 수 없다. 이번 글에서는 일본에서, 아니 어쩌면 현대 패션계에서 가장 중요한 브랜드인 꼼데가르송을 소개한다.
꼼데가르송의 설립자 레이 가와쿠보는 놀랍게도 한 번도 패션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 대학에서 미술과 문학을 전공한 그녀는 1964년부터 섬유 회사에서 근무하였으며, 1967년부터는 개인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2년 뒤 그녀는 꼼데가르송(Comme des Garcons)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만의 옷을 만들기 시작한다. 꼼데가르송은 프랑스어로 '소년들처럼'이라는 뜻인데, 특별한 속뜻은 없으며 단순히 어감이 좋아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자신의 회사를 설립한 지 13년이 지난 1982년 가와쿠보는 처음으로 파리 패션 위크에 그녀의 컬렉션을 선보이게 된다. 당시에는 패션계에 아시아인의 입김이 강하지 않던 시기였지만, 그녀의 컬렉션은 유럽의 디자이너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게 된다.
당시 패션의 트렌드는 유럽의 클래식 복식의 영향을 받아 밝은 색감과 육체미를 부각하는 실루엣이 유행했었다. 가와쿠보의 옷은 이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어두운 무채색과 풍성한 실루엣, 완성되지 않은 듯한 마감은 유럽을 충격에 빠트리며 아방가르드와 해체주의 스타일의 시작을 알렸다. 단순히 서구의 옷을 따라 입기만 하던 일본이 처음으로 자신들만의 패션을 제시하는 순간이었다.
'Not making clothes', 꼼데가르송 2014 S/S 시즌의 컨셉이다.
혹자는 질문한다. "이런 난해한 옷을 도대체 누가 입으려고 할까?" 전제부터 틀렸다. 레이 가와쿠보는 옷을 입으라고 만들지 않는다. 그녀가 직접 디자인하는 꼼데가르송 최상위 라인의 옷들은 각각 한 벌뿐이고, 매우 비싸며, 아무도 사지 않는다. 가와쿠보는 옷을 팔기 위함이 아닌 패션을 혁신하기 위해 옷을 디자인한다.
그녀는 당시 한 인터뷰에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더는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결국 새로운 옷을 만드는 방법은 '옷이 아닌 것'을 만드는 것뿐이었다. 1980년대부터 그녀는 클래식 복식에 뿌리를 둔 옷에서는 더 이상의 혁신이 일어날 수 없다고 판단했으며 무(無)로부터 전혀 새로운 옷을 만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2021년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젊은 세대가 더 이상 남들과 다르게 입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으며, "모두가 안전하게 옷 입는 걸 선택하는 시대가 될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패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과하고 우습게만 보이는 그녀의 발상은 꼼데가르송의 다른 라인들과 타 브랜드들, 그리고 그녀를 추종하는 디자이너들에게 퍼지면서 점점 희석되고 순화되며, 소비자에게 가까운 형태로 변한다. 그렇게 그녀는 알게 모르게 패션계 전반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꼼데가르송과 그곳에서 파생된 준야 와타나베, 사카이, Kolor 등이 모두 세계적인 브랜드가 된 점, 그리고 콧대 높은 유럽의 메종 마르지엘라, 드리스 반 노튼 등이 가와쿠보를 존경해 마지않는 것이 그 증거이다. 다음에 꼼데가르송을 소비할 때는 로고 대신 그 뒤에 가려진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집중해 보는 것은 어떠한가?
보드를 타지 않는 자, 슈프림을 입지 말라 (1) | 2023.1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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