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검정 슬랙스를 혐오하는 이유

나는 검정 슬랙스를 싫어한다. 정확히는 스트레이트핏, TR-Span 원단의 검정 슬랙스를 싫어한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1. 어울리는 색이 딱히 없다

일반적으로 검정 슬랙스는 어떤 옷과도 잘 어울리는 아이템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아쉽지만 틀렸다. 검정 슬랙스는 어떤 옷과도 '안 어울리지는 않는' 아이템이다. 안 어울리지 않는 게 잘 어울리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면, 실제로 어떤 옷과도 잘 어울리는 다른 바지와 비교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 바지는 바로 '흰색 바지'이다. 슬랙스, 데님, 치노 등 소재는 상관없다.

니트와 매치한 코디

셔츠와 매치한 코디

같은 상의에 바지 색깔만 바꿨는데도 룩이 훨씬 화사하고 스타일리시해 보인다. 검정 슬랙스와 매치한 코디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더 뛰어난 대안이 바로 옆에 있다.

2. 너무 무난하다

특색이라고는 찾아볼수도 없다. 가장 무난한 색, 가장 무난한 핏, 가장 무난한 기장, 가장 무난한 원단이다. 덕분에 어떤 옷과도 실패 없이 묻어갈 수 있지만, 그뿐이다. 덕분에 스트레이트핏 검정 슬랙스를 이용해 스타일리시한 코디를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클래식, 아메카지, 미니멀, 스트릿, 아이비 등 수많은 패션 장르 중 검정 슬랙스를 주력 아이템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단 하나도 없다.

3. 너무 많다

 

검정 슬랙스 '클론룩'

너무 많다.

무신사 '검정 슬랙스' 검색 결과

무신사 스탠다드 검정 슬랙스는 단연 무신사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아이템이다. 심지어 무지 흰 티셔츠보다도 많이 팔렸다. 남들이 다 입는 옷은 입기 싫어지는 법이다. 일종의 홍대병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검정 슬랙스를 입고 싶다면?

무채색으로 코디하라

검은색과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은 첫째로 검은색, 둘째로 흰색이다. 검은색과 잘 어울리지도 않는 밝은 컬러를 어쭙잖게 매치할바엔 시크한 올블랙 룩으로 가는 것이 백 배 낫다.

무채색 코디

무채색 룩은 한 가지 단점이 있다. 자칫하면 무난함의 극치이자 클론룩의 전형인 '모나미 룩'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무채색으로 코디하면서도 개성을 잃지 않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다양한 핏을 활용하라

스트레이트핏, 레귤러핏만 피해도 절반은 간다. 무채색 코디는 색감의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핏을 이용해 지루하지 않은 실루엣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 유행하는 와이드핏이나 세미 와이드핏은 레귤러 스트레이트핏의 훌륭한 대안이다. 조금의 포멀함을 챙기고 싶다면 테이퍼드 핏을 선택하면 된다. 플리츠 디테일을 이용해 여유로운 실루엣을 표현할 수도 있다. 짧은 기장의 와이드 팬츠를 입어 개성을 표현해도 좋다. 중요한 것은 핏의 변화를 주는 것이다.

마치며

많은 남성들이 옷을 못 입어 보이지 않기 위해 검정 슬랙스를 선택하고는 한다. 그러나 무난함만 추구해서는 절대 옷을 잘 입을 수 없다. 와이드팬츠나 밝은 색감의 바지가 처음에는 어색해도, 한두 번만 입으면 쉽게 익숙해진다. 다음번에 바지를 구매할 때는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보는 것은 어떠한가?